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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진단의 장점 중 하나는 환자와 환자의 미래에 관한 중요한 결정에 환자 자신을 동참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네덜란드 작가 코스 판조메런의 작품'영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뭐든 네가 아직 해결할 수 있으면 치매가 아냐. 치매라면 해결하기엔 너무 늦은 거지" 

치매를 너무 늦게 발견해도 이렇게 되지만, 환자에게 너무 오래 사실을 숨겨도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치매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질병이 아닙니다.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날아와 '뼈에 박히는' 질병이 아닙니다.

정말 오래오래 진행되는 막연한 과정입니다. 더구나 치매가 이제 막 시작된 환자는 자꾸 까먹기는 해도 아직 정신은 말짱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초기 단계 환자는 아직 자신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다음의 글은 에스테르하지가 2001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10년 전 아직 팔팔하셨을 때 아버지는 장남에게 부탁을 했다. 혹시라도 노병(老兵)이 들거든 꼭 알려 달라고 말이다.

아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늙어 빠진 프리마돈나처럼 어리석고도 뻔뻔하게 자신의 가슴에 벌써 세 번이나 못을 박은 지금에는 절대로 아버지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말을 해야 할 때는 할 수가 없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때에나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의 입장에서는 환자에게 치매 사실을 알리는 일이 너무 힘이 듭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실을 알릴 1차적 의무는 가족이 아니라 의사의 몫입니다.

치매 사실을 환자에게 솔직히 알리지 않는 의사도 있긴 합니다. 의사라고 해서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까지 암환자들에게 사실을 숨겼던 이유와 같은 이유를 대면서 진실이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되며 희망을 앗아 간다고 말하는 의사들도 있긴 합니다.

의사도 소식을 듣고 환자가 울적해질까 봐 또는 화를 내거나 반발할까 봐 겁을 냅니다.

환자의 인지 상태에 따라 진단명을 알려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고 환자의 정서 상태에 따라 진단명을 알았을 때 심각할 정도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환자가 진단명을 알았을 때 치료나 예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다각도에서 고찰이 필요합니다.

의사는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환자에게 치매 사실을 어떻게 알릴지 판단합니다.

환자에게 솔직히 말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말하지 않을 경우 환자를 어린애처럼 , 미숙아처럼 취급하는 것이므로 환자 역시 그에 맞게 행동하여 실제 상태보다 더 무능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알고 나면 환자도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운전을 그만하라는 조언도 금방 수긍할 것입니다.

또 하나 솔직히 말해야 하는 이유는, 사실을 모르면 환자가 자기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치매라는 것을 알고 나면 자신의 문제를 생물학적인 맥락에서 볼 수 있으므로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실을 알리면 큰 비밀을 안고서 계속해서 환자 앞에서 연극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환자도 자신의 불안을 가족과 나눌 수 있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을 알리면 환자의 자율성과 알 권리를 충족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환자가 자신의 미래를 함께 결정할 수 있습니다. 평생 꿈꾸던 휴가를 계획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안 브랜디의 소설 '죽음은 피터팬에게서 온다'에서 주치의가 63세의 작가 피터 케슬러에게 혈관성 치매 진단을 내릴 대도 이런 점을 지적했습니다.

" 한동안은 별 변화가 없을 겁니다. 그러다가 악화될 거고요, 거기서 회복하시면 다시 정체기가 올 겁니다. 물론 전과 같은 수준은 아닐 겁니다. 그렇게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거지요." 그는 손으로 계단식의 내리막길을 그려 보였다.  "이렇게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나요?" 피터가 물었다.

"그건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더 정확히 말해 줄 수 있으실 텐데요."

"네?"

피터에게는 냉혹하고 사악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규칙이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단 하나의 규칙도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다른 주장을 하면 늘 화를 냈다.

"아직. 얼마나. 시간이. 있나요?" 그는 단어를 한 개씩 발음해서 페인턴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생선 조각을 던 져 주듯 에지컴 박사에게 던졌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심합니다. 전 정말로 모릅니다" 박사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아시냐고 묻는 게 아닙니다. 적절한 추정치를 말해 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그럴 능력은 있으시잖습니까."

에지컴  박사는 피터 케슬러에게는 늘 딴 환자들보다 시간을 많이 들였다. 하지만 그날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월요일은 의사들에게 고단한 날이다. 그는 팔꿈치를 받쳤다.

"그렇다면 말씀드리죠. 여행을 가고 싶으신데 거기가 잘 걸어 다녀야 하는 곳이다. 그럼 저라면 내년에 갈 겁니다. 그 후로는..............." 그가 팔을 활짝 벌렸다. "음, 그 후로는 더 힘들어질 겁니다."

-브래디(1996년)-

주치의가 치매 과정 내내 환자와 그 가족과 동행한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입니다. 위의 소설에서도 알 수 있듯 의사는 대부분 정보 전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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